홍콩한타임즈
토요 문학 산책
조개, 개구(開口)
김동환
짠내 흐르는 골마다
저린 아픔이 보글보글 들썩인다
앙다문 틈 사이로 핏기가 가시고
설익은 혀는 굳어져 간다
말라가는 추억 위로 쏟아지는
붉은 고추싸라기에 눈물이 난다
무엇을 위한 감내였던가
친구들과 함께 뛰어들었던 바다,
그 외딴 냄비 속 온탕에서
졸여지는 생이 서글프도록 구수하다
어둠만을 가리키던 방향타
바꿀 수 없던 이정표의 끝자락에서
술 한 잔 부어 행구는 목욕재계
마음의 잡내까지 지워내고
단단한 껍질을 열어 외치는 환호
가자, 친구들아
눈앞의 아침 빛이 황홀하다
<시작노트>
얼마 전, 홍콩 현지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문득 궁금해져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한국인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음식을 앞에 두고 나누는 대화라 그랬을까요. 유독 '술'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닙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참 술을 즐기고, 많이 마시고, 또 밤이 깊도록 오래 마시는 민족이 맞으니까요.
저 역시 술을 참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날 밤, 잔을 채우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독하고 쓰고, 몸에도 그리 좋지 않은 이 액체를 우리는 왜 이토록 사랑하는 걸까?' 입에 쓴 약은 몸에라도 좋다지만, 술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마시는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그 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뿌연 김이 피어오르는 조개탕을 가운데 두고 술잔을 부딪치다 건너편을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마시고 있었던 것은 알코올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었구나 하는 것을요.
뜨거운 냄비 속에서 온몸을 비틀며 단단한 껍질을 열어젖히는 조개의 모습은, 어쩌면 팍팍한 세상살이 속에서 마음을 꽁꽁 앙다물고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주 한 잔을 채워 목을 헹구고 나면, 마음속에 엉겨 붙어 있던 잡내 같은 아픔도, 어두움도, 서글픔도 조금은 씻겨 내려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속마음을 활짝 열어(開口) 서로를 마주 보게 됩니다.
오늘도 낯선 홍콩 땅에서 치열한 하루를 보낸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한잔을 권하고 싶습니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과 고단함일랑 흘러가는 술잔 속에 털어버리고, 서로를 위로하는 온기만 가득한 주말이 되기를 바랍니다.

AI생성 이미지
시인 김동환
제주 출생.
2024년 서정문학 상반기 신인상 등단
4.3 전국 청소년 문예공모 대상
적도문학상 수상 외
(현) KIS 한국과정 국어교사

2026 KIS 첫 번째 학부모 연수 6월 17일(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