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화산 겨울 - 김동환 


체온이 몇 도쯤 내려앉았을까

하늘은 오래도록 재를 뒤집어쓴 채

겨울을 흘려보내고, 목을 긁어대던 기침은

아직 오지 않은 날들만 허투루 토해낸다  


불안한 눈길 머무는 곳마다

아슬하게 흔들리던 봉우리.


컥, 컥-  


끝내 삼키지 못한 신음만 검은 하늘 아래 쌓여간다

두려움은 먼저 식어 우리 사이에 서리로 내리고

남아 있던 온기는 불씨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천천히 

사라진다.


어쩌면 알고 있었을 테지.


불이 지나간 자리엔

언젠가 겨울이 온다는 것을

그런데도 왜 나는 자꾸 남은 온기를 헤아렸을까.


가장 뜨거웠던 것이

가장 차갑게 식어가는 계절.

우리는 그렇게 화산 겨울로

뜨겁게 식어간다.


〈시작 노트〉

 인도네시아에서 화산이 분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주 오래전, 지구에 기나긴 겨울을 불러왔던 화산 역시 인도네시아에 있었다고 한다. 뜨거운 불길이 세상을 얼어붙게 한다는 것.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계절이 한순간 맞닿아, 아플 만큼 시린 슬픔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의 바람도 조금씩 서늘해지고 있다. 한여름의 초록을 한껏 뽐내던 나뭇잎들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 하나둘 가지를 떠난다. 유난히 짙은 초록을 품었던 잎일수록 더욱 붉게 물들고, 그렇게 저마다의 빛깔로 마지막 계절을 건너간다. 어쩌면 이별도 그러할 것이다. 가장 뜨겁게 머물렀던 것들이 가장 선명한 흔적을 남기며 멀어지는 일.


 내년에도 봄은 돌아올 것이다. 얼어붙은 땅은 다시 풀리고, 나무는 새로운 잎을 틔울 것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봄이 지나가 버린 봄과 같을 수는 없으리라. 계절은 되풀이되어도 그 계절을 함께 건넜던 순간들은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래서인지 오늘은 조금 일찍 겨울을 생각한다. 지나간 온기를 애써 붙잡기보다는 눈을 감고 바람이 스쳐 가는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떠나가는 것들을 모두 붙잡을 수는 없겠지만, 한때 내 곁에 머물렀던 온기만큼은 오래 기억할 수 있을 테니.


 어쩌면 어떤 겨울은 그렇게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차갑게 식어 가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 남은 온기를 조용히 헤아리는 일로.


 홍콩도 바람이 조금씩 서늘해지고 있다. 낙엽이 진다는 것은 이별의 시간 또한 다가온다는 것이다. 한여름 초록을 뽐냈던 이파리일수록 더욱 붉게 늙고 떨어진다. 


 내년 봄이 다시 오겠지만, 올해 지나가 버린 봄이 그리워질 것도 같은 오늘이다. 이런 날에는 그냥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는 게 가장 무난한 겨울나기인 듯하다. 



시인 김동환

제주 출생.

2024년 서정문학 상반기 신인상 등단

4.3 전국 청소년 문예공모 대상

적도문학상 수상 외

(현) KIS 한국과정 국어교사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6-10-17 10:18:17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굽네치킨
솔마켓
화평건축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