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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엮는 밤-"희미하고 눈부신" 홍콩한국국제학교 12학년 박소정
  • 기사등록 2026-06-24 21:27:17
  • 기사수정 2026-06-24 21: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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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엮는 밤


"희미하고 눈부신"


홍콩한국국제학교 12학년 박소정


매일 똑같은 걸음이라 해서

가치 없는 삶은 아니다


인생은 거창한 도달점이 아니라

서툰 오늘을 채워가는 과정이기에


그저 흘러가는 듯한 하루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연한 발자국을 남긴다


완벽하지 않아 조금은 흐릿한 그 모습이

어느새 세상을 채우는 빛이 된다


마침내 거대한 별자리를 완성하는 건

어딘가에 찍힌 커다란 점 하나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어두운 밤하늘을 묵묵히 걷는

우리의 모든 희미한 발걸음은, 이미 눈부시다



<시 읽기: 내일을 향한 꾸준함, 그 희미하고도 눈부신 여정>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다 보면, 그들의 내면이 자라나는 결이 손끝에 닿을 듯 전해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거칠게 방황하고 때로는 소리 없이 여물어가며,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삶의 궤적을 바꾸어 갑니다.


 이전의 소정 학생이 써 내려간 문장들 속에는 깊은 우울과 아련한 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청춘이 으레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라기엔 그 무게가 못내 안쓰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이번에 마주한 소정의 시는 전혀 다른 숨결을 품고 있었습니다. 


웅크려 있던 감정의 늪에서 걸어나와 냉혹한 현실을 담담히 인정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를 길어 올리려는 단단한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서툰 오늘을 채워가는 과정 자체가 삶의 가치임을 스스로 깨달은 아이의 문장을 읽으며, 교사로서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안도감과 대견함이 밀려왔습니다. '아, 이 아이가 지금 바른 길을 찾아 묵묵히 걸어가고 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매번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저는 아이들에게 치열하게 부딪쳐 보라고 독려합니다. 하지만 냉정한 숫자의 세계에서 1등은 오직 한 명뿐이며, 저마다의 위치에서 각기 다른 성적표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 잔인한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아이들을 향한 다그침과 격려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결과의 유무를 떠나 '발걸음 자체를 멈추지는 말라'는 간절한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혹은 눈앞에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학생들이 섣불리 자신의 삶을 실패나 불행이라는 단어로 단정 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깊이를 가늠해보지도 못한 채, 설익은 오늘의 모습으로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서글픈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등수가 삶의 증명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제 곧 학교는 활기찬 방학을 맞이합니다. 대입의 가장 치열한 문턱에 선 12학년들은 치열하고 거친 하루하루를 견뎌낼 것이고, 11학년들은 저마다의 학업적 도약을 위해 분주히 움직일 것입니다. 아직은 천진난만한 저학년 아이들은 오랜만에 고국으로 돌아가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겠지요.


 보이는 모습과 머무는 공간은 다를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밤하늘을 묵묵히 걷는 그 모든 아이들의 서툴고 희미한 발걸음이 결국에는 단단한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임을 말입니다. 아이들만 그럴까요. 우리 어른들도 마찬가지겠지요. 당장 눈부신 별이 되지 못하더라도 낙담하지 않기를. 꾸준함이라는 위대한 가치에 기대어 하루의 의미를 쌓아가는 홍콩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든 내일이, 소정의 시처럼 이미 눈부시게 빛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도교사 

시인 김동환

제주 출생.

2024년 서정문학 상반기 신인상 등단

4.3 전국 청소년 문예공모 대상

적도문학상 수상 외

(현) KIS 한국과정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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